마태복음 1장과 누가복음 3장에는 각각 서로 다른 예수님의 족보가 나온다.
다음 두 절을 비교해보자.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으니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가 나시니라"(마1:16)
"사람들이 알기에는 그(예수)는 요셉의 아들이요, 요셉은 엘리의 아들이며"(눅3:23)
마태에 따르면 요셉의 아버지가 야곱인데, 누가에 따르면 요셉의 아버지가 엘리(헬리)이다.
그렇다면 요셉을 아들로 가진 사람이 둘이라는 것인데 이는 얼핏 이상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우리는 오직 성경 자체에서 족보에 관한 충분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우선 구약과 이스라엘에서 '아들'이란 아버지 유산의 합법적 상속자를 의미한다.
단적으로 예수님께서 공공연히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예수님께 "그럼 당신의 어머니는 누구냐?"고 묻는 사람이 없었다.
그 이유는 듣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란 '하나님 왕국의 계승자'를 의미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스라엘이 현실에서도 '아들'을 '유산의 합법적 계승자'라는 의미로 사용했다는 근거가 있는가?
그렇다. 우리는 룻기에서 이것을 확실히 알 수 있다.
"나오미가 아기를 받아 품에 품고 그의 양육자가 되니
그의 이웃 여인들이 그에게 이름을 지어 주되 나오미에게 아들이 태어났다 하여
그의 이름을 오벳이라 하였는데"(룻4:16~17)
여기서 오벳은 명백히 보아스와 룻이 결혼하여 나은 아들인데도 조모인 나오미가 양육자가 되고
심지어 이웃 여인들이 "나오미에게 아들이 태어났다"라고 말할 뿐 아니라,
오벳이라는 이름도 보아스의 뜻대로 지은것이 아님을 말씀하고 있다.
즉 나오미의 남편인 엘리멜렉과 그 아들들이 모두 죽고 자신과 며느리만 남은 상태에서
보아스를 통한 계대결혼으로 태어난 아들은 우선적으로 엘리멜렉의 상속자가 되어야 하는데,
그런 의미에서 마을 공동체 전체가 오벳을 '나오미의 아들'로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성경의 다른 계보에서 오벳은 보아스의 아들로 등장한다.
이와같이 보아스도 다른 아들이 없었으므로 결국 오벳의 아버지는 세 명(엘리멜렉, 말룐/기룐, 보아스)이 된 것이다.
율법은 친아들이 아닌 자가 상속자가 되는 경위 즉,
어떤 사람이 아버지가 둘 이상이 될만한 경위를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1. 남자가 사망시에 아들이 없고 딸만 있을 경우에는 딸이 기업을 잇게 되는데(민27:8),
그 딸은 같은 지파의 남자와 결혼을 해야 하고(민36:8), 결국 죽은 사람의 사위가 상속자가 된다.
2. 남자가 사망시에 자식이 없고 아내만 있을 경우에는 죽은 사람의 형제가 그 과부와 결혼을 하여
상속자를 낳아 주어야 하는데(신25:5~6) 이 경우 죽은 사람의 조카가 상속자가 된다.
3. 남자가 사망시에 처자식이 없으면 죽은 사람의 가장 가까운 친적이 기업을 잇는다.(민27:10~11)
이 경우 가까운 친척 중 한 사람이 사망자의 상속자가 된다.
요셉은 위와 같은 이유로 모순 없이 서로 다른 두 아버지를 갖게 된 것이다.
사실 두 계보에 오류가 있다는 가정은 당시 이스라엘 상황에서는 거의 불가능한 것이다.
위의 예와 같이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당시 족보는 율법과 상속에 관한 필수적인 자료였다.
또한 인구조사시에 "요셉은 다윗의 자손이므로 베들레헴 다윗의 동네로" 갔다고 기록되어있다.
이는 요셉의 다윗의 자손일 뿐 아니라, 이스라엘의 모든 사람이 족보를 따라 각각 모이는 것이 가능했음을 의미한다.
이와같이 두 계보를 완전히 무시하더라도 요셉이 다윗의 직계자손임을 보이는 것이 어렵지 않은 상황에서,
굳이 두 계보에 모순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별로 근거가 없는 것이다.
그러면 남은 질문은 마태와 누가는 각각 어떤 기준으로 족보를 선정하여 기록한 것인가?
또 야곱과 헬리 중 누가 요셉의 친아버지인가? 인데,
이것을 판단하기 위해 성경의 다른 계보들을 찾아볼 필요가 있다.
마침 역대상 3장에 있는 다윗부터 여호야긴까지의 계보가 마태복음과 대부분 일치한다.
역대상 3장은 다윗 왕조의 계보인데 마태복음과 대응시켜보면 아래와 같다.
여기서 회색 칸의 이름은 악한 왕을, 녹색 칸은 악한 일과 선한 일을 모두 했던 왕을 가리킨다.
위 표로부터 눈에 띄는 것은 마태의 계보에는 몇몇 왕들이 의도적으로 누락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주로 악행 때문에 하나님의 인정을 받지 못했던 왕들이다.
이와같이 마태복음의 계보는 의도적인 누락을 포함하고 있다.
즉 마태복음의 계보에서는 어느정도 육신을 초월한 선택이 가해졌으며,
아마도 하나님께 인정받은 자들, 특히 왕들의 경로를 통해 다윗과 요셉이 이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마태가 예수님을 다윗의 27대손으로 기록한 것도 혈통적 대수가 아니라 하나님께 인정받은 자들의 대수인 것이다.
어떤 분들은 이것이 '14라는 숫자를 맞추기 위한 편집'이라고도 하지만,
사실 이런 주장은 근거도 확실치 않고, 성경을 사람이 임의로 썼다고 인정하는 것과 같다.
창세기의 계보는 최초의 예배자이며 순교자인 아벨 대신, 하나님이 주신 셋으로부터 시작한다.
복잡하고 화려한 가인의 계보와는 대조적으로,
셋의 계보는 설명이 단순하고 대부분 오직 한 명의 아들만을 기록하면서 이어진다.
여러 아들들 중에 오직 한 아들을 통해서만 내려간 이 계보를 규정한 것은 과연 무엇일까?
그들이 단 한명의 자손에게만 물려주었던 '기업'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여자의 후손'이라고 불리운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믿음이었던 것이다.
결국 마태의 계보는 창세기부터 수록되었던 그 믿음의 계보를 잇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근거는 다음과 같다.
(1) 이 계보에서 누락된 왕들은 모두 하나님을 고의로 거부한 사람들이다.
(2) 하나님께서 여호야김의 후손중에 다윗의 왕위에 앉을 자가 없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렘36:30)
그 여호야김 이후로 역대상과 마태복음의 계보가 갈라지고 있다.
마태의 계보는, 하나님의 기업이 육신을 초월하여 이어진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고,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한 신적 권위를 갖는 메시야로서의 예수님을 드러내고 있다.
반면 누가복음의 계보에서 다윗과 요셉을 잇는 대부분의 인물들은 성경의 다른 부분에 기록되어있지 않다.
누가는 예수님으로부터 시작하여 거꾸로 추적하다가 갑자기 다윗을 만나는듯한 계보를 수록하였다.
누가에 따르면 예수님은 다윗의 42대손인데 이는 마태복음의 27대손보다 훨씬 많은 것이다.
이런 차이가 발생한 이유를 알아보기 위해 누가가 계보를 소개한 배경을 살펴보자.
우선 누가복음 1장 2절에서 저작 의도를 밝히면서 누가는 자기 자신에 대해
"그 모든 일을 근원부터 자세히 미루어 살핀 나"라고 소개하고 있다.
또한 누가복음의 계보가 시작되는 부분의 서술을 보면,
"성령이 비둘기 같은 형체로 그의 위에 강림하시더니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예수께서 가르치심을 시작하실 때에 삼십 세쯤 되시니라
사람들이 아는 대로는 요셉의 아들이니 요셉의 위는 헬리요"(눅3:22~23)
이므로, 이처럼 여기서 누가가 예수님의 계보를 소개하게 된 계기는
하나님께서 직접 하늘로부터 예수님께 "너는 내 아들이라"라고 말씀하심으로써
많은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었기 때문에
그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의 자연스러운 반응을 따라,
그 전까지 예수님의 아버지로 여겨졌던 요셉의 조상을 면밀히 추적해본 것이다.
이와같이 누가는 계보를 소개하면서 명백히 다음 세 가지를 얘기하고 있다.
1. 예수님의 아버지는 하나님이라는 것.
2. 당시 사람들은 예수님의 아버지를 요셉으로 생각했다는 것.
3. 요셉은 다윗, 아브라함, 아담의 후손이라는 것.
이러한 누가의 서술 특성과 족보 소개의 계기를 고려하면 누가가 요셉의 아버지를 지목할 때
가능한 두 후보인 야곱과 헬리 중 친아버지를 기록하였다고 생각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누가는 이방인 데오빌로에게 '예수'라는 유대인을 소개하면서
그에게 일어났던 일들의 근원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아버지로 알려진 요셉의 족보를 수록한 것인데,
이방인에게 소개하는 입장에서라도 당연히 혈통적인 계보가 자연스러운 것이다.
또한 예수님이 아담의 75대손임을 명확히 밝히면서
인류의 창조자이신 하나님이 얼마나 우리와 가까운지를 실감케 하기도 한다.
누가가 요셉의 혈통적 계보를 선택했다는 귀류법적 근거들도 있다.
1. 만약 누가가 요셉의 혈통적 조상을 추적한 것이 아니라면 굳이 아담까지 기록할 이유가 없다.
당시 사람들의 생각에 따른 계보 또는 법적 계보였다면 다윗까지만으로 충분하다.
'다윗의 자손'이라는 단어 자체가 메시야에 대한 대명사처럼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누가는 조상을 아담까지 추적하면서 요셉이 다윗의 후손일 뿐 아니라 명백히 사람('아담')임을 밝히고 있다.
2. 만약 누가가 헬리 대신 야곱을 지목하기로 결정했다면
그 결과로 기록될 족보는 시간상 먼저 기록된 마태복음 뿐만 아니라 역대상 3장과도 일치하게 되고,
예수님의 왕족으로서의 정통성 뿐 아니라 자신의 기록의 신빙성을 획득하는데도 더 유리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권위의 손실에도 불구하고 굳이 요셉의 아버지를 헬리로 기록한 것은,
전술한 바와 같이 누가가 '사건의 정확한 경위'에 촛점을 맞추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렇듯 누가는 사건의 배경을 침착하고 꼼꼼하게 소개하면서 기록하였기 때문에
예수님의 역사적 사실성과 구약 예언의 현실성을 부각시키고 있다.
이상의 추론에 따르면
마태복음은 하나님의 기업인 메시야에 대한 믿음의(믿음으로 하나님께 인정된) 계보를 기록한 것이고
누가복음은 요셉의 순수 혈통적 계보를 기록한 것이다.
따라서 요셉은 야곱의 상속자이면서 헬리의 친아들이고 다윗의 41대손이며 아담의 74대손이다.
사실 현재 대부분의 인류도 아담의 불과 150대손정도일 뿐이며, 인간은 이렇게도 빨리 하나님을 잊는 것이다.
마태와 마가의 두 계보가 나누어졌다가 다시 만나는 곳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아버지로 알려졌던 요셉을 만난다.
중요한 것은 두 계보의 상이함 때문에 당시 수많은 '다윗의 자손'들 중에서
'진정한 다윗의 자손'으로 불릴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예수님 뿐일 가능성이 매우 높아진다는 사실이다.
만약 마태복음만 있다면 예수님이 다윗의 진짜(생물학적) 후손인지 공격받게되고,
반대로 누가복음만 있다면 예수님의 왕권이 공격받게 된다.
이와같이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의 두 계보가 있어야만 예수님이 확실한 다윗의 자손으로 인정될 수 있고,
따라서 성경이 이루어지기 위해 애초에 두 개의 계보가 있어야만 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성경을 자세히 읽어보면 예수님의 친아버지는 언제나 하나님으로 규정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실 아무리 족보를 조사한다 하더라도 동정녀 탄생은 혈통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누가복음을 마리아의 계보라고 주장하는 것은 임의적인 가정일 뿐 아니라 다음과 같은 헛점이 있다.
설령 누가복음이 마리아의 계보라 하더라도, 어차피 그것은 예수님의 육신의 계보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한다.
인류가 근래에 알게된 바로도, 마리아에게는 남자로 기록된 예수님의Y 성염색체가 없는데,
이는 아담의 XY 염색체로부터 하와의 XX 염색체가 만들어질 수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즉 예수님의 육체의 일부는 필연적으로 아담 뿐만 아니라 마리아와도 무관하다.
적어도 예수님의 Y염색체는 성령 잉태를 통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예수님에 대한 다음 별명들의 힌트를 얻을 수 있다.
'하나님의 아들' - 예수님은 영적일뿐 아니라 육적인 차원에서도 성령으로 잉태된 하나님의 아들이다.
'두번째 아담' - 예수님의 탄생은 아담의 탄생에 필적하는 하나님의 창조사역이 개입되었다.
'여자의 후손' - 예수님은 남자인 요셉과 무관하며, 남자들로 이어지는 계보와 무관하다.
결정적으로 예수님의 몸에는 아담으로부터 올 수 없는 부분이 존재한다.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미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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